도리사

해동 최초 가람 도리사(桃李寺) 

선산과 구미남쪽을 꿰뚫고 흐르는 낙동강의 동쪽 구미시 해평면 송곡동 태조산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신라 19대 눌지왕(417년) 때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람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웠다는 해동불교의 발상지이다.


아도화상은 중국에서 현창화상에게 선도를 배워 19세에 자명을 받아 선산 도개부에 있는 모례의 집에서 굴실을 지어 거처하다가 시봉자가 늘어나게 되어 진기승지를 찾아 결암봉불 하던 중 이 곳에 오색도화가 설중에 만개하여 사호를 도리사라 하니 해동 최초가람으로 신라불법의 초전법륜지인 것이다.

신라 불교 초전법륜지로 성지화된 이 곳은 1976년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올 때 모셔 온 세존 진신사리가 세존사리탑 보수 공사 중 금동육각사리함(金銅六角舍利函)에 봉안되어 발견되었다.
금동육각사리함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 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1968년 봄 아미타 좌상 도금시 불상 밑에서 1731년 영조 7년 때의 중수기가 발견되었으며, 극락전 뜰 앞에 있는 보물 470호인 도리사 화엄 석탑은 일반적인 석탑과 다른 특이한 양식이다.
그 형태는 여러 개의 석주를 맞대어 기단부를 형성하였고 다시 그 상층 부에 중층의 탑신부와 상륜을 배치한 특수형식으로 귀중한 문화재로서 옛 향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아도화상이 도를 닦았다는 좌선대 옆에는 아도의 사적비 겸 자운비가 있는데 앞면에는 인조 17년에, 뒷면에는 효종6년에 새긴 아도의 사적이 음각되어 있다. 현존 건물은 법당 극락전과 삼성각을 비롯하여 선원과 2동의 요사, 그리고 세존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다.

전각안내

적멸보궁 

새로 건립된 석가여래사리탑은 높이 560cm에 폭 390cm로서, 그 형태는 고려시대 팔각부도(八角浮屠)를 본 따 1987년에, 그리고 불사리 예배소인 적멸보궁(寂滅寶宮)은 1982년에 주지 법등화상(法燈和尙)에 의하여 각각 건립 되었으며,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에 총 19평이다.

삼성각 

삼성각은 정면 3간, 측면 1간의 맞배집이며, 총 7평이다. 내부의 존상은 칠성탱(210×150cm, 1992년)을 중심으로 좌우에 독성탱(167×150cm, 1992년)과 산신탱(160×150cm, 1992년), 그리고 아도대화상진영(阿道大和尙眞影, 132×90.5, 1920년)을 봉안하였다.

선원 

선원은 태조선원이라 하며, 정면 7간, 측면 8간의 ㄷ자형 건물로서, 크기는 총 50평이다. 내부에는 후불탱(159×182cm, 1931년)을 봉안하였다. 근래 선지식인 전강 영신 큰스님을 비롯하여, 성철 큰스님도 이 곳 도리사 태조선원에서 정진하였다

성보 문화재 

목조 아미타 여래좌상

도리사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 여래좌상은 1600년에 만들어 개금(改金)한 것으로 높이 129cm, 견폭 61cm, 슬폭 93cm이다.몸에 비해 머리가 크며, 평면적이고 네모진 넓은 얼굴이 당시 불상 조각의 양식을 엿보게 한다. 머리에는 낮은 나발(螺髮)에 작은 육계를 갖추었다. 양미간(兩眉間) 중앙에는 작은 백호(白毫)가 있으며,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정연하다. 양팔에 걸친 통견의(通肩衣)는 양무릎을 덮고 있으며, 가슴아래 군의(裙衣)는 띠 매듭 대신 앙연문상(仰蓮文狀)의 옷자락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1986년 개금불사(改金佛事)중 불상 밑에서 발견된 1731년(英祖7年)의 도리사 중수기는 사찰연혁(寺刹沿革)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극락전

신라(新羅)에 불교(佛敎)를 전(傳)한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지었다는 원래의 도리사는 불에 타서 없어졌으나, “도리사 금당암 중창기<1807>(桃李寺 金堂庵 重創記)”와 “선산 도리사 법당 중수기<1876>(善山 桃李寺 法堂 重修記)”에 따르면 도리사에는 금당암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건물 전체적으로 보아 외부(外部) 앙설(仰舌)과 상부의 익공(翼工)과 특히 주두부분(株頭部分)에서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안팎에서 둘러싸고 있는 안초공(按草工)의 발달된 모양이 1870년에 중건(重建)된 경복궁 근정전(景福宮 勤政殿)의 공포 구성양식(空砲構成樣式)과 매우 근접한 형식을 갖춘 조선시대(朝鮮時代) 후기말(後期末) 건축(建築)의 특징(特徵)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석탑

보물 470호로 지정된 석탑은 화엄석탑이라 부르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같은 유형을 찿아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되었다. 얆은 지대석을 놓고 장대석을 세운 기단을 만든 위에 판석으로 갑석을 삼고 그 위에 모전 석탑처럼 작은 석재로 쌓아 답신부를 구성하였으며, 윗 부분은 노반 위에 연꽃이 조각된 보주를 얹어 놓았다.

아도화상 사적비와 불량탑 시주질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1호로 지정된 아도화상 사적비와 불량탑 시주질비는 도리사 남쪽 비탈진 송림에 남향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1655년(효종6)에 세운 것으로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한 사적을 적은 것이며, 배면에는 자운비가 음각되어 있다.자연석으로 전면에는 쌍용, 후면에는 4룡을 조각하고 그 사이에 운용을 조각하여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불량탑 시주질비는 도리사에 불량탑을 시사한 시주와 전답량을 기록한 것으로 1712년(숙종38)에 세웠다.
비의 전·후면에는 양각한 연봉과 줄기가 조각되어 있고, 좌·우측면에는 2단의 운조대가 있다. 그리고 정상의 중앙에는 보주가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승통 능철의 주관하에 조성되었으며, 석수 김성원이 글씨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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