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도립공원

태양의 정기 황금빛 까마귀 금오산(金烏山) 

한반도의 진산(鎭山)은 우리의 영산(靈山)인 백두산이다.

백두산에서 태백산이 이루어졌고 다시 소백산이 되고 소백산은 죽령(竹嶺)과 조령(鳥嶺) 그리고 추풍령을 지나 무주의 덕유산을 만들어 남으로 힘차게 내치다가 한 지맥이 동북으로 거슬러 김천 대덕의 수도산이 되더니 여기서 세 갈래로 나누어져 하나는 동남으로 내치어 합천의 가야산이 되고, 또 한줄기는 서북으로 뻗어 충청, 전라, 경상 세 도(道)의 경계점에 솟아 삼도봉(三道峯)이 되고, 나머지 한줄기가 북으로 내치다가 땅속으로 스미듯이 하면서 간직했던 기백(氣魄)을 구미, 김천, 칠곡의 경계점에서 크게 내 뿜었으니 그 높이가 976m인 금오산(金烏山)이다.

금오산(金烏山)이라는 이름은 어느 날 이 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名山)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태양안에 금까마귀가 산다고 믿었고 그 금까마귀는 발이 셋달린 삼족오(三足鳥)로 기이한 형상의 까마귀이나 태양의 핵이요 상징으로, 태양은 원시시대부터 인류의 가장 숭고하고 위대한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 어느 민족이든 원시종교의 형태로 신앙의 자체라 믿었으며 그 태양안에서도 핵이요 정기(精氣)인 금까마귀는 우리 인류의 절대적인 존재였었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는데 고려시대에는 남숭산(南嵩山)이라 하였다.
그 유래는 중국의 황하강 유역 하남성(河南省)에 중국 오악(五嶽) 중의 하나로 유명한 숭산(嵩山)과 생김새가 흡사하여 남숭산이라 명명하였고, 남쪽에 있다 해서 남숭산이라 부른 것이다. 특히 황해도 해주에 북숭산을 두어 남북으로 대칭(對稱)케 되었다.

고려시대 문종(文宗)은 왕자를 출가시켜 이 남숭산에서 수도(修道)하게 하였는데, 그 왕자는 훗날 대각국사(大覺國師)로 봉해져 호국불교의 포교와 국정 자문에 임하였으니 남숭산의 품격과 위상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금오산은 1,000m를 넘지 않는 산이지만 굳이 숭자(嵩字)를 붙여 중국의 유명한 숭산에 비겨 말하는 것은 이처럼 그 위용(偉容)과 품격이 비범한 데서 기인되었다고 여겨진다.

금오산은 암석으로 골짜기마다 남성적인 기상이 넘치는 기암괴석(奇岩怪石)으로 힘과 기백(氣魄)이 서려 있고, 빼어난 경관을 갖추고 있어 옛 선현(先賢)들은 소금강(小金剛)이라고 불렀다. 또한 중국의 수양산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 굶어 죽은 백이숙제(伯夷叔齊)이야기와 야은(冶隱) 길재(吉再)선생의 충절을 기려 수양산(首陽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칠곡군 숭산리의 순국의사(殉國義士) 만송(晩松) 유병헌(劉秉憲)선생의 문집에 따르면 "선비들이 다 사모하는 수양산 기슭에다 내 시신을 묻어다오" 라고 유언(遺言)을 할 정도로 선비들 사이에서는 수양산으로도 통용(通用)되어 왔다고 전한다.

선산 방면에서 보면

상봉(上峯)이 흡사 붓끝 같다고 해서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그로 인해서인지 선산지방에는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문인(文人), 달사(達士), 명필(名筆)이 대(代)를 끊이지 않았다.
조선조 성종(成宗)때의 문신 성현(成俔)은 그의 저서 용재총화에 "조선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朝鮮人材 半在 嶺南이요 嶺南人材 半在 善山)"라 하였고, 그 후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서도 그와 같이 언급되었으니 이는 모두 금오산 정기(精氣)의 영험(靈驗)이라는 평가도 있다.

구미시 인동 방면에서 보면

부처님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와불산(臥佛山)이라고 하여 귀인과 대작(大爵)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귀인이 관(冠)을 쓰고 있는 모습 같다 해서 귀봉(貴峯)이라 칭하기도 하였고, 또한 마치 거인이 누워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거인산(巨人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김천방면에서 보면

부잣집 노적가리 같다고 해서 노적봉(露積峯)이라 하였는데 실제로 옛부터 이 지방에는 큰 부자(富者)가 많았다.

김천시 개령면 방면에서 보면

큰 도둑이 무엇을 훔치려고 숨어서 노려보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적봉(賊峯)이라 하였으며,

성주군 방면에서 보면

여인네가 산발한 모습 같다고 해서 음봉(淫峯)이라 하였다. 이런 많은 별칭들은 금오산의 위용(威容)과 준엄(峻嚴)한 자태에 대한 선인(先人)들의 애정이 담겨진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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